도민과 함께 제주가치를 실현하는 정책 싱크탱크 |
| 제주연구원 원장직무대행 이 성 용 |
보 도 자 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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배 포 일 | 2022. 09. 19 | ||
담당부서
| 연구기획협력부 ☎ 064-729-0516 |
문 의
| 현혜경 책임연구원 ☎ 064-729-0527 |
조선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왜구 침략, 을미왜변 민관협력으로 이루어낸 제주대첩 승전사 조명 및 역사문화자원화 학술대회 개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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○ 제주특별자치도(도지사 오영훈)와 제주연구원(원장직무대행 이성용)은 2022년 9월 22일 목요일 아스타호텔에서 “을묘왜변과 지역사회 대응, 역사문화자원화”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.
○ 명종 10년 1555년에 일어난 을묘왜변은 영암 및 제주지역에서 발발하였는데, 조선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왜구 침략이었다. 1592년(선조25년)에 일어났던 임진왜란 이전 최대의 왜구 침략이었던 을묘왜변은 조선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그동안 역사교과서를 비롯하여 학계에서 제대로 조명될 기회를 갖지 못하였으며 도민사회에서도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.
○ 명종실록(1555년 7월 7일)에는 “수성파적(守城破賊)”이라 하여 영암의 수성, 제주의 파적이라 기록하고 있는데, 1000여명의 왜구를 제주군민(軍民)들이 일당백 일체심으로 대응하여 적을 물리친 제주대첩은 당대 조선을 비롯하여 동아시아 평화 정착에 기여한 공이 크다.
○ 제주 전투는 제주성을 사이에 두고 대규모 접전이 벌어졌는데, 만일 제주성이 함락되었다면 조선의 지원군이 파견되기 전에 왜구에 의한 제주민의 피해는 엄청났을 뿐만 아니라, 일본과 한반도 및 중국과 연결되는 해상 요충지 제주가 왜구 수중에 들어간다는 것은 당시 동북아시아 정세에 큰 지각 변동을 초래할 사안이었다.
○ 특히 왜구에 대한 정확한 정보 및 중앙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제주의 효용군 및 치마돌격대(馳馬突擊隊, 김성조, 김직손, 이희준, 문시봉) 등 제주 군민(軍民)들의 기개와 용기로 이룩한 제주대첩은 “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”는 충무공 이순신의 정신처럼, 제주공동체의 기개와 일체심이 폭발하였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.
○ 이번 학술대회는 호남지역에서 을묘왜변을 연구하고 있는 연구진과 제주에서 을묘왜변을 연구하고 있는 연구진들이 모여, 을묘왜변 당시 지역사회의 대응과 이를 미래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역사문화자원화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계획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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